민서의 <좋아> 인기가요 1위 쾌거 기념 : 윤종신의 근본을 찾아서

By | 2017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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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요 라이브는 시원하게 말아먹었….공중파라 너무 떨었나보ㄷㅏ.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텅 빈 거리에서) 이라며, 공중전화 기본요금이 20원이던 시절에 데뷔한(필자가 아직 돌잔치도 못 했을 시절입니다…) 윤종신. 이때만 해도 윤종신이 음악계에서 이름 그대로 종-신할지는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허나 알 사람은 다 안ㄷㅏ. 윤종신의 음악사엔 그 무언가 묵직한 든든함을 주는 ‘근본’이란 게 결여되어 있음을.

 

그는 여타의 뮤지션처럼 교과적인 음악 공부 과정을 거치진 않았으나, 몇 가지 아이디어만으로 편곡을 구성해 낼 수 있는 재기발랄함을 지녔ㄷㅏ. 그는 라디오에 나와 선배 작사가들의 작사법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주류의 가사법을 관통하면서도, ‘몰랐었어'(너의 결혼식)로 시작하는 도치법으로 기존 개념을 파괴합니다. 그가 마치 <월간 윤종신>으로 음악 외길을 걷는 것 같지만, 등용하는 뮤지션들은 하나 같이 핫한 사람들입니다. 아, 물론 미스틱 소속 신인들을 빼면. 그가 만든 미스틱은 3대 기획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메인스트림에 끼지는 못하지만, 소속사의 신인 가수들을 홍보하기 위해 자신의 방송계 지위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ㄷㅏ. 원래 어떤 인간도 한 가지의 장르로 규정할 수는 없는 존재이나, 일종의 경향성이란 것을 가지게 마련인데 윤종신은 ‘기회유의적’이란 말로도 부족한 널뛰기 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독특한 그의 위치만큼이나 독특한 캐릭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윤종신이 이토록 아리까리한 것도, 아리까리 할 수 있는 것도 특주의 뻔뻔함에서 나온ㄷㅏ. 윤종신과 친분이 두터운 동료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완벽유의적인 성향을 띈ㄷㅏ. 김동률이야 말할 것도 없고, 015b도 마찬가지며, 심지어 유희열조차 다른 사람에게 곡을 줄 때 ‘토이’가 가진 이미지와 가수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든 에둘러 거절하곤 했습니다. 유희열이 그토록 친한 김장훈에게 <난 남자다>를 준 것 외에 이렇다 할 곡이 없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허나, 윤종신, 주저함이 없습니다. 본인이 예능에서 수시로 말하듯, 편의점에서 상품을 팔듯 곡을 파는 행위에서 깐깐한 뮤지션의 독고다이함이나 외곬 기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의 음악 여정 가운데에서 뻔뻔함을 엿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 역시 많습니다. 솔직히 가수 윤종신의 음색이 명성에 걸맞다고 하긴 좀 거시기합니다. 오죽하면 신인 시절에 미성을 ‘연기’해야 했을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결국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결정적인 차이는 음색에 있습니다. 본인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ㄷㅏ. 그런데 김연우가 출연하기로 예정된 유스케에서 김연우의 컨디션 악화로 대신 나오고 “저도 노래 곧잘 해요”라고 <이별 택시>를 부른다거나(심지어 음원으로 이미 만들었ㄷㅏ.), 본인 정규 앨범의 수록곡인 <내일 할 일>을 “이 곡은 역시 시경이한테 갔어야 해.” 라고 기꺼이 ‘발라드 그 자체’ 성시경에게 선사하고, 이미 아이유가 곡을 완성한 <첫 이별 그 날밤>을 중년의 아저씨 버전으로 다시 부르질 않나, 영화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면서 <환생>의 코믹한 버전인 <매우 느끼한 환생>을, 그것도 편곡자 유희열과 함께 부르는 만행을 일삼는ㄷㅏ. 음악 감독은 소위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작업인 동시에 그 타이틀로 일종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인데, 윤종신은 ‘권위 그딴 게 뭐야 걸리적거리게’ 스러운 결과물을 내놓는ㄷㅏ. 이 곡은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ost인데, 아무리 감독이 무명이라지만 영화 감독보다 음악 감독의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은 무슨 배짱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작사가’ 윤종신 역시 그를 설명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입니다. <출국>, <난치병>이 수록된 하림 2집이 망할까 봐 ‘탁영(탁한 영혼)’이란 가명을 써서 참여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예능 이미지가 음악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유사한 예로 리쌍의 길이 있는데, 길은 이것 때믄에 꽤 오랜 시간 무도도 음악도 엉망이었ㄷㅏ. 지금은 영원히 쎄굿바…. 허나 윤종신을 이것을 순수한, 예술적인, 완고한, 품위 있는 음악으로 극복하기보다, <영계백숙>이나 <바래바래>를 쓰면서 뻔뻔함의 절정을 보여준ㄷㅏ.

 

오 투나잇 그녀가 날 본 것 같아
오 디제이 내 심장박동에
리듬이 못 따라와 주잖아
에블바래 집중바래 집중바래
모두다 집중바래
에블바래 몰입바래 몰입바래
한없이 몰입바래

 

샤이니 노래들에 쓰인 가사와 자웅을 겨룰만한 이 괴랄함. 그와중에 스토리텔링은 또 있습니다. 이 곡은 한 네티즌에게 “개그맨이면 개그맨답게 예능이나 하세요.”란 평가를 받았는데, 윤종신은 또 그걸 받아서 감사하다는 글을 썼ㄷㅏ. 그리고 윤종신은 자신이 부른 <바래바래>를 지극히 토이남스러운 곡, <빈 고백>과 함께 앨범에 수록합니다. 비록 정규앨범은 아니지만, 어떤 트랙을 어떻게 배치하고, 앨범의 컨셉에 맞는 트랙들을 수록하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고전적인 음악 예술 관점이 있습니다. 윤종신은 그 체제엔 순응하면서 결정적인 지점에서 엇나가는, 마치 학교다닐 때 딱히 노는 애도 아닌데 담배피고 술먹고 할 건 다 하면서 공부도 하는 아이같은 짓을 일삼는ㄷㅏ.

 

그렇다고 딱히 정규 앨범이 근본이 충만한 건 또 아닙니다. 윤종신이 <슈가맨>에 나왔을 때, 작사가 김이나가 “편곡을 윤종신님이 했어요?”라고 놀리는 장면이 있었ㄷㅏ. 친한 사람들끼리 농담한 건데, 윤종신은 이를 “이순신 장군이 지휘를 하듯” 이란 드립을 치고 받았습니다. 결과물은 역시 자신의 곡을 재탕해서 버무렸습니다. 이렇게 그가 혼자의 힘으로 곡의 시작과 완성을 유려하게 해내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은,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만 처음 앨범을 만든, 4집 <공존>에서 대뽀록났ㄷㅏ. <공존>은 무근본 그 자체인 앨범입니다. 무근본이 아주 흘러넘치다 못해 익사할 수준입니다. 편곡 작법을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디어만 가지고 녹음실로 들어가고, 참여한 연주자들에게 ‘이런저런 느낌으로 해주때요’라고 디렉팅한 결과물이 타이틀곡 <부디>ㄷㅏ. 다소 묘한 것은 이 거칠고 투박하고 엉성한 세션으로 채워진 노래가, 사운드를 빠방하게 채운 리메이크 버전보다 낫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구구절절한 눈물 타령으로 범벅된 <부디>의 다음 트랙이, 괴작 <내 사랑 못난이>ㄷㅏ. 

 

그가 구축한 시스템 역시 뻔뻔합니다. ‘음악 노예’로 농담처럼 말하는, 자신은 스케치와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편곡자가 완성하는 시스템은 일종의 하청업체 시스템이면서, 한편으론 도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유사한 모든의 시스템이 그렇듯 철저한 갑을관계로 변질되기 쉽지만, 윤종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포지션은 “이젠 창작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을 알았습니다.”는 그의 말처럼, 음원 시장의 독과점 형태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취할 수 있는 묘한 지점에 걸쳐 있습니다. 이익을 내야 하는 사장의 마인드에 충실하면서, 자신과 소속 아티스트들의 창작을 충분히 지원하는 기묘한 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윤종신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찌만, 또 윤종신의 개인기만으로 돌아가지도 않는ㄷㅏ. 유사하게 굴러가는 유희열의 안테나뮤직이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과는 정반대의 회사, 미스틱의 이미지도 역시 그렇ㄷㅏ.

 

민서의 <좋아>는, 나열한 윤종신의 뻔뻔함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참 재밌ㄷㅏ. 첫 번째, 완성도의 뻔뻔함. 윤종신이 <좋니>를 부른 시점에서 사실 곡은 완성되었ㄷㅏ. 듣는 이로 해금, 상대 여성의 감정이 아련함일까, 혹은 지긋지긋함일까 추측하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 결과물 그 이상의 감정을 di양산해내는 완성을 이미 이뤄냈ㄷㅏ. 허나 굳이,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안 했을, 그것도 ‘그 사랑은 지긋지긋했어. 난 지금 행복해.’라고 찌질남에게 빅엿을 멕이는 확인사살 답가로 여타의 다른 감정이 끼어들 여지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곡의 완성도를 해치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가사의 뻔뻔함. 윤종신의 만든 모든의 곡은 남성 화자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았었ㄷㅏ. ‘너의 새 남자친구 얘길 들었지. 나 제대하기 얼마 전(오래전 그날)’, ‘전철 안에 예쁜 여자들 이제는 쳐다보지 않아요(환생)’, ‘너의 온도 너의 촉감 머리결과 너의 귀는 듣지 않고 만지고 싶어(구요)’, ‘너 이젠 그의 곁을 떠나가지 마. 그때가 넌 예쁘지(몬스터)’ 등, 이별한 남자의 사소한 감정들을 포착, 서사로 풀어내 감동을 선사하는 그의 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ㄷㅏ. 허나 박정현, 박지윤, 김예림, 장필순, 정인 등 수많은 여성 뮤지션과의 결과물이 매우 훌륭했지만, 여성 화자의 시선에 오롯이 충실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ㄷㅏ. 그런데 루싸이트 토끼와 작업한 사라진 소녀에서 “내가 엄마가 되면”이라 하더니, <좋아>에서 완연한 ‘전 여친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충실해서 다소 섬뜩했고, 섬뜩함이 지나니 불편했으며, 불편함이 지나니 자괴감이 밀려 올라왔ㄷㅏ. <좋니>에서 한창 이별뽕에 취해있던 남자는, <좋아>를 들으면 어느새 자신이 홍상수 영화의 남주가 되어 있다는 것에 깜놀합니다. 제목이 <좋니>였기에 망정이지, <자니?>였다면 멘탈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답가가 <잔다> 이 대부분 것은 윤종신이 자신의 곡이지만,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는 뻔뻔함을 보인 덕이었ㄷㅏ.

 

세 번째, 비즈니스적인 뻔뻔함. 민서의 <좋아>는 라퓨마의 제작 지원으로 만들어졌ㄷㅏ. 졸라게 뜬금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좋니>가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유튜버들의 수많은 2차 창작물이 쏟아질 때 이미 여자 버전 답가가 나왔ㄷㅏ. 원창작물 -> 서브컬쳐 2차 창작물 -> 메인스트림 원창작물로 이어지는 묘한 관계인데, 서브컬쳐에서 다시 메인으로 넘어갈 때 비즈니스가 개입했습니다. 윤종신은 창작과 사업의 줄타기를 아주 잘 하는 사람입니다. 민서의 <좋아>가 그저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았다면, 민서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순수하고 청초한 이미지에 꽤 큰 타격이 갔을 것입니다. 윤종신은 비지니스의 영역은 자신이 다 끌어안았고, 민서는 굵직한 신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미 뽕 뽑은 노래로 또 뽕을 뽑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올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뻔뻔하게 잘만 그래왔던 윤종신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또 민서라는 신인의 목소리로 식상함이 사라졌ㄷㅏ. 

 

이렇듯, 윤종신의 영혼을 가득 끌어모은 뽐뿌질은, 결국 민서가 인기가요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ㄷㅏ.

 

 

윤종신의 영역을 특정지을 수 없는 종횡무진 활약은, 업계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분야가 안 그러겠냐만, 방송계의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구조적인 모순이나 예술에 대한 관점과 충돌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또 자기 식구들을 무한히 챙겨주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좋니>의 답가를 만들지 않았다면, 여자 버전 노래를 부른 유튜버는 술술 잘 풀려서 언젠가 그 노래의 리메이크 버전을 음원으로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회는 공정하지 않ㄷㅏ. 허나 윤종신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예의상 유튜버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라도 한마디 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엄연히 제3의 회사가 개입한 만큼 그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윗 문단을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윤종신은 그가 가장 원하는 창작을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처절한 생존투쟁입니다. 결국, 많은 아티스트들이 껄끄러워하고, 겸연쩍어하며, 불편해서 금기로 여겼던 것들을 그는 재능 + 뻔뻔함으로 돌파해왔ㄷㅏ. 그 결과, 윤종신의 독특한 위치가 세워질 수 있었고, 일개 청자 입장에선 퀼리티가 좋은 곡들을 월간 윤종신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ㄷㅏ. 그런 면에서 한국현대사와 닮았습니다. 대부분 것이 사상누각처럼 그때그때 돌려막으고 세워진 시스템. 윤종신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ㄷㅏ.

 

윤종신은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할 것입니다. 이름 그대로 종-신할 것 같ㄷㅏ. 다만 남은 과제가 있따면, 후배 가수들에겐 뻔뻔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요원해 보입니다. 컨셉도, 경향성도, 철학도 없어 보이는 회사가 잘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허나 ‘근본 없는’ 윤종신이 후배들의 근본을 만들어 주는 것만큼 훌륭한 일이 어디 있을까. 뻔뻔함 속에 담겨있는 좌충우돌한 개인사, 지금도 아티스트들이 꿈을 접게 하는 악조건들을 그가 개인의 힘이 아닌, 구조의 힘으로 극복해 어디에 내놔도 고개를 끄덕일 ‘근본’을 만들어내길 진심으로 바란ㄷㅏ. 그리해 인기 가요에서 1위를 한 소속 가수가 사장님에게 감사를 표하기 보단, 자신이 가진 재능에 당당해질 수 있기를 바란ㄷㅏ. 

 

 

 

뱀발. <좋아>로 멘탈이 나간 사람이 있따면, 윤종신의 <9月>을 들으고 정신승리하자. 내가 그랬단 얘기는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