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테크놀로지

By | 2017년 12월 2일

예술과 테크놀로지

(고명석. 도서출판 새빛, 2015(2014). 494쪽)

 

 

예술과 테크놀로지.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ㄷㅏ. 제목이 뭔가 있어보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생각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었ㄷㅏ. 미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지닌 독자라면 비판적으로 따라 읽을 수 있찌만 그런 준비가 안 된 독자라면 힘들어할 것 같ㄷㅏ. 물론 나는 후자였ㄷㅏ.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고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로 읽다 보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하나로 말입니다. 세상에 쉬운 책이 어디 있겠는가?

 

예술과 기술하면 언뜻 별로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적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허나 달리 생각해보면 예술과 기술만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생각해보자. 음은 기술의 승리이자 그 표상입니다. 수많은 악기들은 그 시대 기술의 산물입니다. 얼마나 정교한 악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그 시대 기술이 말해준ㄷㅏ. 시대에 따라 악기는 더 다양해지고 더 정교해지고 우리는 그만큼 더 다양하고 풍부한 소리를 접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배제된 음악은 생각하기 힘들ㄷㅏ.

 

물론 이 책은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논하고 있찌만 여기서 예술은 주로 시각예술입니다. 미술과 조각에서 현대의 비디오 예술에 이르기까지 예술이 어떻게 기술과 이어지고 있는지 탐구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예술과 기술의 기능적 관계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의 이면에 있는, 아니면 예술에 미치는 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기술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술에 침투하고 예술의 개념을 변질시키는가를 이 책은 잘 보여준ㄷㅏ. 기술의 변화는 예술가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예술의 개념을 바꾸어 놓는ㄷㅏ. 저자는 그런 변화를 수많은 이론가들의 글과 실제 작품을 통해 보여준ㄷㅏ.

 

이 책은 역사적 시대에 따른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및 변천사를 서술하고 있지는 않ㄷㅏ. 저자는 예술사에서의 주요한 개념별로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서술합니다. 예술과 미메시스, 재현과 환영으로서의 예술, 아방가르드와 20세기, 매체미학의 전개, 모더니즘 회화, 예술 내러티브의 종말, 네오아방가르드를 위한 변론, 미니멀리즘 얘기, 팝아트를 보는 시각, 기호와 예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디지털 가상의 매체미학이라는 소제목들이 이 책의 서술 방향을 잘 보여준ㄷㅏ.

 

혹시 실제 기술의 변화가 예술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변화를 가져왔는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그 기대를 조금 비켜갈 것입니다. 이 책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에 대한 예술의 대응 내지 해석 혹은 예술에 의한 기술의 내면화를 다룬 것이기 때믄입니다. 즉 제목이 포괄적으로 예술과 테크놀로지이지만 저자는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일대일로 대비해서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실제 이 책을 읽을 때 지나치게 테크놀로지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읽기엔 그렇ㄷㅏ.

 

이 책은 현란합니다. 이 책엔 플라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학과 관련된 수많은 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ㄷㅏ. 저자의 풍부한 독서와 이론가들에 대한 해석은 감탄을 자아낸ㄷㅏ. 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일독하고 나면 미학에서의 중요한 이슈와 논쟁에 대하여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학이론이 어떻게 변해오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ㄷㅏ.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습니다. 허나 그 미덕이 동시에 약점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은 대학에서 같은 제목의 교양수업을 위한 강의에서 시작해서 책으로 출판되었ㄷㅏ. 그래서 의문이 든ㄷㅏ. 만약 저자가 이 책처럼 실제 수업을 진행했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따라갔을까? 의심스럽ㄷㅏ. 학부 학생들이 미학에 대한 풍부한 교양을 지녔을 것 같지 않ㄷㅏ. 이 책엔 매 장(Chapter)마다 수많은 이론가들의 글이 빼곡합니다. 아마 이런 식의 수업은 저자의 박식에 대한 선전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미학을 이해하는데 생각만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ㄷㅏ. 수업은 저자의 과욕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 책은 인용문의 범벅입니다. 수없이 나오는 인용문은 오히려 독서를 방해합니다. 저자는 텍스트를 다 읽었으니 인용문이 텍스트에서 지니는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겠지만 문외한의 독자로서는 거두절미하고 발췌된 인용문은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ㄷㅏ. 또한 저자는 낯선 용어를 그대로 쏟아놓으고 어색한 표현이 속출합니다. 물론 그것이 미학계에서는 익숙한 용어나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 불편합니다. 이왕 대중을 위한 책을 구상했다면 좀 더 풀어서 쓰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리가 복잡하고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대부분 내용이 내 머리에 저장된 것이 아니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버렸습니다. 눈을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내 망막에 비친 글자들이 뇌에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린 느낌입니다. 물론 그 일차적 책임은 무식한 독자인 나의 탓이지만 저자의 책임 역시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이해했다’. 그는 독자에게 끝없이 이렇게 자신의 박식을 강요하는 것 같ㄷㅏ. 그것도 종횡무진으로 무질서하게 말입니다.

 

책은 장으로 나누어지고 각 장은 다시 세분화되어 있찌만 각각의 주제 하나하나가 벅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제들에 대하여 무수한 이론가들의 글을 도배해놓았으니 독자들이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많은 학생들은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면서 ‘와 그 선생님 정말 많이 안다’하고 찬탄을 했을 것입니다. 허나 선생이 많이 안다는 것과 학생이 많이 배웠다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많이 안다는 것과 독자가 독서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